한글, 한국어
수업시간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그래서 세종대왕이라고 했다. 내가 인물을 설명하는 대상은 중국인이었다. 원래 한자만 사용하다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정보였다. 25년을 살고, 모국어로 한글을 배우면서 이런것도 몰랐다니..
그래서 찾아보고, 공부하였다.
다음 기회에 한국어에 대한 설명을 위해, 대한민국의 대표이기도 하니까.
더욱 부딪히고, 더욱 공부하고, 더욱 배우고 수정하고 하나씩 하나씩 다듬어 가야지.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말은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부터 사용되어왔다.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것은 우리 말인 한국어가 아니라
우리 글자인 한글이다.
훈민정음 서문 中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음성)이 서로 맞지 않으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많다.
이래서 훈민정음을 만드셨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주시경(周時經)이 지은 것으로 ‘크다’, ‘바르다’, ‘하나’를 뜻하는 고유어 ‘한’에서 비롯되었다. 그 뜻은 큰 글 가운데 오직 하나뿐인 좋은 글, 온겨레가 한결같이 써온글, 글가운데 바른글(똑바른 가운데를 한가운데라 하듯이), 모난데없이 둥근글(입크기에 알맞게 찬것을 한입이라 하듯이)이란 여러 뜻을 한데 모은 것이라 하기도 한다.
한국은 삼국시대부터 이두(吏讀)와 구결(口訣)을 써 왔는데, 구결은 본래 한문에 구두(句讀)를 떼는 데 쓰기 위한 일종의 보조적 편법에 지나지 않았고, 이두는 비록 한국어를 표시함에 틀림이 없었지만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적을 수 없었으며, 그 표기법의 일원성(一元性)이 없어서 설사 이두로써 족하다 해도 한자교육이 선행되어야 했다. 이러한 문자생활의 불편은 한자를 쓰지 않고도,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새로운 글자의 출현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러한 사조가 세종때에 특히 두드러져 드디어 1443년 음력 12월에 문자혁명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훈민정음 창제의 취지에 관하여는 세종이 손수 저술한 《훈민정음》 예의편(例義篇) 첫머리에 잘 나타나 있는데, 첫째 한국어는 중국말과 다르므로 한자를 가지고는 잘 표기할 수 없으며, 둘째 우리의 고유한 글자가 없어서 문자생활의 불편이 매우 심하고, 셋째 이런 뜻에서 새로 글자를 만들었으니 일상생활에 편하게 쓰라는 것이다. 한글 창제 당시에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라는 뜻으로 ‘훈민정음’이라 하였고, 줄여서 ‘정음(正音)’이라는 이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지식층으로부터 경시되었다.
1445년(세종 27) 4월에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악장(樂章)인 《용비어천가》를 편찬하고, 1447년(세종 29) 5월에 간행하였다. 목판본 10권 5책 모두 125장에 달하는 서사시로서, 한글로 엮어진 책으로는 한국 최초의 것이 된다. 세종은 “어리석은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세종실록》, 세종 26년) 《삼강행실도》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도록 했으며, 훈민정음이 반포된 뒤에는 일부 관리를 뽑을 때 훈민정음을 시험하도록 했다. 이후로 민간과 조정의 일부 문서에서 훈민정음을 써 왔다.
-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A%B8%8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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