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등산을 했다. 정상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데 청설모가 내 옆에 와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시간이 멈춘 듯했고 참 귀여웠고 챙겨주고 싶고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탐님의 유투브 중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방법에 대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람쥐에 대한 예시가 나왔고, 내가 다람쥐를 바라보는 것처럼 내 자신도 다람쥐를 바라보듯이 바라보라는 말씀이었다. 내 자신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것 말이다.
정상에서 내가 청설모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기 때문에 단번에 이해했다.
내 스스로를 판단하고 자책하고,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에 지쳤다.
이게 지금까지의 나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이젠 내가 초월해야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스스로에게 너무나 높은 기준과 기대치로 인해 항상 나를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도달했다면 다음 단계로 나를 밀어부치며 도달하지 못하는 허상을 좇는다. 남들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밀며 나혼자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비난하거나, 그 반대로 부러워한다.
내가 요즘에 힘들어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는 정의를 내렸다.
내 이상과 맞지 않는 현실에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남들이 인정해주는 좋은 회사에 다녀야 한다. 나는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 나의 회사 동료, 상사는 수준이 높아야 하며 내가 본받을 정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난 이직도 잘 해야 한다. 내가 사는 집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 멀쩡하며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야한다. 내 이웃집은 조용해야 한다. 이런 내가 세워놓은 이상적인 기준들 말이다.
그리고 알았챘다. 이 현실이 이상과 동일하게 되더라도 나는 또 다시 다른 변명거리를 찾고, 그 탓을 나에게 혹은 다른 대상에게 돌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마땅히 이런 것들을 누리며 살아햐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원할수는 있으나, 이것으로 인해 내가 괴롭다면.. 나는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괴로운 마음을 직면하기 두려워서 그냥 멍하니 게임이나 스타같은 동영상만 본거 같다. 저번주에 글을 쓰려고 해도 잘 써지지도 않았다.
이제 나를 너그럽게 좀 봐라봐주자. 나의 생일 기념으로 내 자신을 청설모를 쳐다보듯 흐믓하게 너그럽게 바라봐주자.
지금의 나는 완전합니다. 지금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내가 나탐님 유투브를 보며 정리한 글이다. 풀영상을 다 보기를 추천하며, 이 외에 다른 나탐님 영상들도 추천한다.
1편
나를 사랑하는 방법
내면 자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외부 자아가 원하는 것을 하면 불안하다.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때부터 달라졌다.
초점을 내부에 맞춘다.
2편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과는 관련이 없다.
숲속에서 다람쥐를 보게 된다면 흐믓해하며 다람쥐를 바라볼 것이다. 시간이 멈춤듯 평화롭고 고요하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나를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것. 내가 어떠하든 나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이다.
나에 대해 생각,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좋고, 싫음이 없다. 그저 평화롭게 바라본다.
나를 사랑하지 않을수록 나에 대한 기준과 기대치가 높다. 상상 속 이상적인 나를 그리고, 항상 실망스럽고 부족한 나로 인식한다. 도달하지 못하는 허상을 좇는다.
-무의식 속 관념
다른 사람들 역시 무의식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어떤 대상에게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투사시켜 찬사하고 부러워함
어떤 대상에게 ‘부족한 나의 모습’을 투사시켜 비난하고 싫어한다.
내가 보는 현실은 내 내면이 비취 보이는 거울 속 세상이다.
내가 판단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내 무의식 속 관념을 볼수 있다.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단계 (수년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원망의 대상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감사하기
1.인정하기) 울고있는 자아가 그 대상을 원망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피해자 행세하는 나 알아차리기
2.이해하기) 그 원망의 대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반복적으로 갖기. 대상이 자라온 성장배경 파악하고 이해하여 누구의 책임도 잘못도 아님을 이해하기. 그 대상에게 원인이 있다는 건 착각임.
그 대상도 역시 그의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상처받은 피해자이다. 그 대상에게 원인이 있다는 건 착각임.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수도 보상을 바랄수 없다.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채 살아가면 또 같은 굴레에 살아간다. 나의 무의식을 정화해야만 이 카르마를 끊을수있다. 나만 할수있다.
3.용서하기) 나와 마찬가지로 울고있는 자아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됨. 그 대상을 용서한다. 그 대상을 원망했던 나도 용서한다.
4.감사하기) 감정이 가라앉고 대상에게 반복적으로 감사보내기. 상처난 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의 은인입니다. - 그 대상 덕분에 내 마음이 치유되고 사랑이 생기는 것들 느끼게 된다. 익숙해질때까지 반복적으로.
이렇게 하면 울고 있는 자아는 웃음을 찾게됨. 그 대상 덕분에 내 마음이 치유되고 사랑이 생겨남을 알게된다.
나에게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져서 나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
3편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나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해하는 등의 감정과는 관련이 없다.
사랑이란? 분별하지 않는 마음.
그 어떤 것도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지 않는 상태
옳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념 없음
마음 치우치지 않는 상태
마음이 텅 빔
나에 대해 분별이 없는 상태. 나에 대해 아무렇지도, 좋은 평가, 나쁜 평가도 없는
그저 완전하게 보는, 생각 감정이 비어있음,
에고를 볼 때 돌이나 나무를 보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는 상태. 왜 돌이 바닥에 있지? 모양이 왜 저래?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텅 빈 마음으로 본다. 나무에 대해 관념이 없음.
남들, 우주 만물에 대해 분별심 없는 것 = 온전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
모든 것을 너그럽게 보는 상태
에고가 강한 사람 – 현상에 대해 분별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것을 좋고 저것은 싫다
나는 이런 것을 하는 사람이고, 저런 것은 하지 않는다.
이원적 관념을 가진다. – 두려움을 바탕으로 해서 사랑이 없다.
나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늦잠자면 이렇게 살면 안되지! 게으른 것은 나쁘다라고 생각하게 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돌을 볼 때 처럼 나에 대해 아무 마음이 올라오지 않는 상태. 어떤 ‘좋은 상태’ 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 자체가 올라올 수 없는 것. 좋고 나쁨을 없애는 것이 사랑이다. 스크린 위 (현실)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다만, 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보지 못하고 삐딱하게 보고 있는 그 ‘마음’만이 문제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등 분별하는 마음이 있는지 바라보아야한다.
‘분별심을 가지지 말아야한다’ 또한 분별심을 내는 것이다. 이것 또한 사로잡히는 것이다.
출처:
https://youtu.be/4FOQZ6ZFlqU?si=xKY2QAf9COeQCKY_
https://youtu.be/RPuJ2tHeY2M?si=yPkNtkoC8XfOFDzP
https://youtu.be/62N-jyWdFvU?si=sJWkDY2amKiUQm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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